
인간은 원하지도 않았지만 태어나서 원하지도 않은 고통들을 겪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죽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생애를 걸쳐 겪는 것은 고독감이다.
세상과 단절되었고 외부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무방비한 상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고독감의 해소는 세상과의 합일(둘 이상이 합하여 하나가 됨)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프롬은 가정한다.
고독감의 해결을 위해 역사적으로 많은 해결법들이 제시되어 왔고 여러 문화권의 특징적인 부분들에 의해 개인의 고독감은 다른 방향으로 해소되고는 했다.
흔히 마약, 알코올, 일시적 관계 등이 고독감의 해소를 위한 행동이다.
다만,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고독감이 해소(합일)될 수 없으며 일시적일 뿐이다.
진정한 고독감의 해소는 성숙한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살다 보면 지나가며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랑의 설명을 잘 나타낸다.
형제애와 자기애
프롬이 설명하는 형제애란 형제애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질에 대한 사랑에 가까운 사랑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기에 서로의 본질을 알려하고 그 본질을 아는 것으로서 고독을 해소할 수 있다.
타인의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그 사람의 본질에 침투하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은 나와 타인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은 모순적이기에 타인의 본질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또한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특성
본질적으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의 독특한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의 사랑을 주는 것으로 인해 상대방의 내면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을 주는 능력이 사랑하는 능력의 중요한 한 측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주는 능력은 무엇일까?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무언가를 줄 수 없다. 즉 생산적인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
생산적인 사람이란 무엇일까?
생산적인 사람이란 타인에게 집중하고 그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하여(사랑을 주어) 끝내는 상대방에게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받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은, 생산할 줄 모르는 것이며, 이는 타인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결과로 인해 고독에서 벗어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신앙의 측면에서의 사랑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은 급격하게 시작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의 세계에 대해 빠르게 알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서로는 곧 철저히 규명되고 곧 "친밀한" 사람으로 변한다.
이러한 친밀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사람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관계 또한 동일한 방법으로 곧 규명되며 다시 "친밀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러한 반복의 결과 사랑은 결국 강렬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런 흐름에서 한 사람과 일평생을 사랑하겠노라 이야기하고 결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랑한다는 것이 단순한 감정이 아닌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중요한 측면에서는 신앙이 있다.
신앙은 그 인간 기저에서 시작되어 그것을 믿는 그 사람에게서 변치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변치 않을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이유이다. (매일같이 쉽게 변하는 사람을 믿고 결혼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실천
이러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능력들이 필요하다.
우선 "정신 집중" 능력이 필요하다.
미디어, 타인과의 대화 등이 없이 집중하여 혼자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의 증명이다.
집중이라는 것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훈련될 수 있는데, 특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일이던 대화이던) 오롯이 몰입하여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타인에게 관심을 쏟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정신 집중을 통해 나와 주변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는 부모가 자식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란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반복하는 것이다.
"정신 집중"은 절대 쉽지 않으며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훈련하지 않고는 키우기 어려운 능력이다.
이는 인내로만 훈련할 수 있다.
또한 객관성을 가지는 능력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어떤 병원에 예약을 한다고 해보자.
A : "오늘 저녁 6시에 병원에 내원하려 합니다. 예약 가능할까요?"
의사 : "오늘은 예약이 꽉 차서 불가능합니다."
A : "그러나 선생님, 저희 집부터 병원까지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요?"
A의 집이 병원과 멀다는 사실은 금일 예약이 가득 차있다는 사실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자신의 상황을 토대로 전혀 연관성 없는 상황을 엮어서 해석한 것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보던 왜곡되어 인식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신앙"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신앙이란 그 사람의 사고나 감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그 사람에게 사실로 여겨지는 능력이다.
신앙이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는다라는 것은 그 사람의 기본적 태도의 불변성, 즉 그 사랑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앙 위에서 사랑은 유지될 수 있다.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내 삶에서 사랑의 기술이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사실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책을 읽는 내내 제대로 집중을 못하고 읽었는데 첫 번째로 사랑이 필요한 조건이 정신 집중이라고 나왔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알아야 하고, 타인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내게 부족한 능력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생에서 어떤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겠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인생 전반적으로 내게 부족한 것이 인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또한 사랑의 조건이라는 것에 충격을 꽤나 받았다.
나는 무언가에 집중해서 오랜 기간 노력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내 삶이 풍성해지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우선 인내하여 무언가를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책의 깊이에 비해 너무 얕게 읽은 느낌이지만, 내게 약간이나마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